문학교과서현대시

문학교과서 현대시 (1930년대-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남촌 윤승식 2014. 8. 6. 23:09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 이용악

 

우리집도 아니고

일가집도 아닌 집

고향은 더욱 아닌 곳에서점층법(우리집일갓집고향)

아버지의 침상(寢床) 없는 최후(最後)의 밤은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노령(露領)을 다니면서까지

애써 자래운 아들과 딸에게 → 자라게 한. 키운. ‘자래다자라다의 방언

한 마디 남겨 주는 말도 없었고,

아무을만(灣) 헤이룽장 하류의 아무르 지역

설룽한 니코리스크의 밤도 완전히 잊으셨다.서늘한 바람이 불어 좀 추운 듯한

목침을 반듯이 벤 채.

 

다시 뜨시잖는 두 눈에

피지 못한 꿈의 꽃봉오리가 갈앉고,

얼음장에 누우신 듯 손발은 식어갈 뿐

입술은 심장의 영원한 정지(停止)를 가르쳤다.아버지의 비참한 죽음을 객관화(슬픔의 객관화)

때늦은 의원(醫員)이 아모 말없이 돌아간 뒤

이웃 늙은이 손으로

눈빛 미명은 고요히

낯을 덮었다.

 

우리는 머리맡에 엎디어

있는 대로의 울음을 다아 울었고

아버지의 침상(寢床) 없는 최후(最後)의 밤은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1연과 수미상관 

 

<분수령,1937>

 

 

1.핵심 정리

갈 래

자유시. 서정시

성 격

서사적. 회고적, 애상적, 비극적

어 조

감정이 절제된 차분한 어조

제 재

아버지의 죽음

주 제

아버지의 죽음이 준 설움. 아버지의 비참한 죽음과 그에 따른 참담한 슬픔

구성

1

아버지의 객사(客死)와 풀벌레 소리

2

유언도 없이 고통스런 삶을 마감한 아버지

3

아버지의 죽음이 주는 비극

4(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가족의 슬픔

표현상의 특징

1) 각적. 청각적 심상으로 비극을 더 강조함.

2)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비극적 상황을 감정이 절제된 객관적 어조로 그려 냄

3) 수미상관식 구성을 통해 죽음의 비참한 상황을 더욱 부각시키고, 빅그적인 분위기와 함께 시적 화자의 정서를 강조함

4) '풀벌레' 소리는 화자의 서글픔과 상황의 비극성  강조

 

 

2. 맥락 이해

.

고향은 더욱 - 최후(最後)의 밤은 : 고국을 떠나 이국 땅을 떠돌다가 맨바닥에서 죽음을 맞으신 아버지와 그 비극적인 상황을 암시하고 있다.

애써 자래운 아들과 딸에게 / 한 마디 남겨 두는 말도 없었고 : 아버지의 죽음이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다가왔음을 알 수 있는 부분으로 비극적인 분위기가 더욱 커진다.

얼음장에 누우신 - 정지(停止)를 가리켰다. : 화자는 절제된 감정에 바탕해 아버지의 죽음을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 1연에서는 가족의 슬픔을 가득 찬 풀벌레 소리로 대리 표현함으로써 외로움과 적막한 정경을 역설적으로 극대화시키고 있고, 4연에서는 가족의 슬픔에 풀벌레 소리가 더해짐으로써 슬픔의 무게를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3. 감상의 길잡이

이 시의 모티프는 아버지의 죽음이다. 아버지의 죽음은 이용악 시의 근간을 이루는 소재인데, 아버지의 죽음이 준 충격이 담담한 서술 속에 노정되면서도 짙은 슬픔을 충분히 전해 준다. 또한 아버지의 죽음에만 머무르지 않고, 당대 민족의 슬픔을 은연중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2연에 의해 암시된다. 아버지의 죽음을 노령(露領-러시아의 땅)’에서 맞게 된 것이다. 무엇 때문에 러시아 땅에서 죽게 되었는지는 자명하다. 그것은 먹고살기 위해서는 국외로 나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던 당대의 궁핍한 상황 때문이다. 이것은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고 민족 차원의 문제였다. 따라서 시인 자신의 아픔은 때로 우리 민족의 슬픔으로 확대될 요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1연에서는 아버지가 객사(客死)했다는 사실을 말한다. ‘침상 없는 최후의 밤은 객사의 처참함을 돋보이게 한다. 그러나 슬픔은 절제되고 있다. 화자와 가족들의 통곡을 짐짓 풀벌레 울음으로 대리 표현함으로써 죽음의 극한 슬픔을 극대화하고, 감각적 장면으로 처리한다. 여기에서 모더니즘적 성격도 발견된다.

2연에서는 유언도 없이 돌아가셨다는 화자의 진술이 이어진다. ‘아수을만()’, ‘니코리스크라는 지명을 슬쩍 집어넣음으로써 아버지의 죽음을 사회 차원에서 확대한다. 유랑민의 곤궁한 삶은 당시 우리 민족의 가장 큰 설움이었다.

3연에서는 아버지의 죽음 현장이 주는 비극적 모습을 서술한다. 담담한 진술 가운데 애잔한 아픔이 스며들고 있다. ‘눈빛 미명은 고요히 / 낯을 덮었다.’에서도 모더니즘적 일면이 보인다.

4연에서는 죽음을 맞이한 식구들의 슬픔이 그려진다. 여전히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로 장면 처리를 하고 있다. 이것은 화자의 의식이 서술성에 집중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과거형 서술어도 그런 면을 강조한다. 마치 소설의 서술어처럼 과거형을 차용함으로써 서술 기능을 강조하는 것이다.

서술 기능이 강조되면, 미적 요소보다 주제성이 강조되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이 시에서는 그런 면을 찾기 어렵다. 슬픔을 간접화, 객관화한다고 슬픔의 강도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슬픔이 직접 토로되기보다 여과된 슬픔으로 다가올 때 지적인 수용과 더불어 슬픔은 더 깊게 파고들 수 있다. 이 시의 빼어난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덧붙여 이 작품의 형식적 특징을 알아보기로 한다.

화자는 자신의 감정 표출을 절제하고 있다. 어조 자체를 적절히 조절함으로써 죽음의 비극성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1연의 마지막 행이 4연에도 되풀이되는 수미상관의 구조로 주제 의식을 더욱 뚜렷하게 전달하는 한편 풀벌레 소리에 의해 환기되는 서정적인 정조가 화자의 슬픔과 애통함을 절절히 대변해 주고 있다.

아버지 죽음에 대한 객관적 묘사

풀벌레 소리 가득찬 분위기  

감정의 절제를 통한 비극성 강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