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례(古禮)에 의하면 고조(高祖)까지는 가묘(家廟)에서 향사(享祀)하고 대진(代盡)하면 향사(享祀)하며 만약 선묘(先墓)하면 단(壇)을 모아 향사(享祀)함이 우리나라 고금의 통례(通禮)다.
엎드려 생각함에 우리 시조공(始祖公), 이하 7세(七世) 선조(先祖)가 실전(失傳)됨은 900 여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문물제도는 자주 변하고 거기에 더욱 후손의 정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긴 일이였으니 우리 문중사에 있어서 큰 슬픈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다행히 칠위(七位) 선조의 휘함(諱啣)이 분명하게 전해 오고 가통(家統)의 정연하게 이어 오니 그 분들 혈계(血系)를 이어 받아 오늘에 있게된 우리 후손들의 추모의 정이야 추호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황공(惶恐)하옵고개를 들 수 있으리오.
지난 1981년(신유년)에 서울 중앙종친회가 앞장서 이 때까지 지내지 못했던 시조공 이하 7세(七世) 설단(設壇)을 봉사(奉祀)키로 발의함에 각 파 문의(門議)가 적극 찬성함으로써 드디어 거액의 자금을 모금하여 한천동(寒泉洞) 도선산하(都先山下) 영모당(永慕堂) 뒷동산에 단비(壇碑)와 상석(床石)을 갖추어 단소(壇所)를 모으고 주변에는 후손이 정성껏 헌납한 나무와 잔디로써 아름답게 단장하여 우리 종족들의 선조 추모의 성역(聖域)으로 만들어 매년 음력 9월 9일에 단제(壇祭)를 드리고 있다. 그 뿐 아니다. 평상시에도 선조의 유덕(遺德)을 기리는 마음으로 이 곳을 참례하는 후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상으로 실전된 시조공 이하 7세(七世) 선조의 사적을 우리나라 성씨창정유래(姓氏創定由來)등을 참고하고 선인의 기록을 바탕으로 구명(究明)해 보았으나 세월이 오래되고 문헌이 없어져서 추정적논리를 벗어나지 못하였으나 뒷날에 확실한 고증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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