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윤씨

10.「해남윤씨(海南尹氏)와 칠원윤씨(漆原尹氏)가 같은 조상 」이라는 문제

남촌 윤승식 2013. 8. 4. 23:00

칠원윤씨(尹氏) 보에 우리 해남윤씨(海南尹氏) 6세조 좌의정공(左議政公)  ()과 이름과 관직(官職)이 똑같은 분이 그들의 고려말 중세조(中世祖)로서 기록되어 있다. 고려사(高麗史) 칠원읍지(漆原邑志)에도 이 분들의 이름과 관직(官職)이 똑같이 실려있다. 그러므로 우리 해남윤씨(海南尹氏) 선조(先祖)와 칠원윤씨(漆原尹氏) 선조(先祖)가 동일인(同一人)으로서 같은 집안이다는 문제가 옛날부터 있었다고 우리 족보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면 다음에 고려사(高麗史), 칠원읍지(漆原邑誌), 칠원윤씨(漆原尹氏) 보록(譜錄)에 나타난 기록을 살펴본다.

고려사(高麗史)에는 우왕(禑王) 에 정승 윤환(尹桓)이 사직하고 고향 칠원(漆原)으로 돌아갔다 하였고,

고려사(高麗史) 망기(網紀)에는 우왕(禑王) 6(1379)에 윤환(尹桓)이 정승이 되었으며 우왕11(1384)에 별세하였다 하였고,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이조 성종 9년 편찬)에는 고려(高麗)때 윤환(尹桓)은 오조(五朝,고려 충혜왕부터 우왕까지)를 벼슬하면서 3번 수상(首相)이 되고 칠원군(漆原君)으로 봉작(封爵)된 분이며 그 아들은 잠()이니 사마(司馬)라 하였고,

칠원읍지(漆原邑誌)에는 윤정승(尹政丞) ()이 있는데, 그 아들 이름이 처음에는 녹화(祿和)였지만 나중에 ()이라 하였는 데, 벼슬은 진사(進士)였고,

칠원윤씨(尹氏) 족보에는 환()(고려와 이조 정)5형제인데 아들이 없어 그 둘째 동생 장()아들 윤천효(尹天斅)입양하여 대를 잇게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두 분의 사적(事蹟) 사기(史記)와 족보의 기록에서 대조하여 표로 정리해 보면,

구분

 

사기

와 족보

칠원윤씨 선조 윤환

구분

 

사기

와 족보

해남윤씨 선조 윤환

이름

관명

아들의 이름과 관명

거소와

재세 연대

이름

관명

아들의 이름과 관명

거소와

재세 연대

고려사

 

고려사

×

고려사망기

 

고려사망기

×

동국여지승람

×

동국여지승람

×

칠원읍지

×

칠원읍지

×

칠원윤씨족보

×

Ø

칠원윤씨족보

×

×

 

※ ○서로 같은 표 × 서로 다른 표 Ø不明

위 표에서와 같이 몇 항목을 가지고 해남윤씨(海南尹氏)과 칠원윤씨(尹氏) 대조해 보면 ()부터 ()까지의 사실(史實)칠원윤씨(尹氏)윤환(尹桓)우리 해남윤씨(海南尹氏) 윤환(尹桓)과 이름과 관직은 물론 그 아들의 이름과 관직까지 똑같이 되어있다. 그러나 () 칠원윤씨(尹氏) 족보에는 두 분의 이름과 관직만 같을 뿐이요, 그 선조(先祖)의 이름과 그 아들의 이름과 관직이 우리 해남윤씨(海南尹氏) 선조(先祖,녹화)와 전혀 다르며,그들의 보록(譜錄)에 나타난 아들이 거읍(居邑)인 칠원읍지(漆原邑誌)의 기록과 전혀 다르다는 것은 큰 모순이다.

우리 선인(先人)들은 여러 기록을 고증해보고 다음과 같이 몇 가지를 전해 주셨다.

첫째, 고려사망기(高麗史網紀)에 우왕(禑王) 11(1385)에 칠원의 윤정승이 돌아가셨다고 했는데 이때는 바로 영동정공 윤광전(尹光琠)께서 소윤공 윤단학에게 노비급부하셨던 지정(至正) 14(1354)보다 31년 후이니 두 분의 재세연대(在世年代)가 서로 맞지 않으며,

둘째, 설사 두 분이 같은 사람이라 보고 장수(長壽)하여서 손자가 증손자에게 노비급부함을 보았다고 가정하더라도 현재 우리가 보존하고 있는 노비문서(광전께서 소윤공 단학께 급비하신 문서. 병진보 1권 참조)를 보면 위업과 공이 빛난 살아있는 정승의 차손(次孫)이 탐진감무(耽津監務)에게 제출한 문서로는 그 체모와 격식이 너무 저자세(低姿勢)라는 느낌이 있으며,

셋째,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실린 윤정승은 칠원읍(漆原邑) 인물이 확실하며( 여지승람은 칠원 윤정승이 1385년에 돌아가신 후 1393년 당시 노사신)이 편찬했으니 고려 때의 이름난 재상의 돌아가신 연대를 모를 수가 없음) 우리 선조 윤정승은 급비문서(給婢文書)로 보아 탐진현에 살아계심이 확실하니 같은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 없으며,

넷째, 칠원읍지에는 윤정승의 아들이 처음엔 녹화(祿和)였지만 후엔 ()으로 되어있어 우리 선조(先祖)와 똑같지만 칠원윤씨 보록에는 아들이 없어 조카 윤천효(尹天斅)로 하여금 대를 이었다고 하므로 그들의 보록 또한 믿을 수가 없다.

이러한 몇 가지 이유로 인하여 해남윤씨(海南尹氏) 칠원윤씨(漆原尹氏) 본시 같은 조상이었다가 후에 분파되었다는 말은 이유와 근거없이 추측만으로 할 말이 못된다고 써있고 또 해남윤씨 17대손 윤정기(尹廷琦,항촌파,호는 방산) 칠원의 윤정승과 우리 선조 윤정승과는 우연적으로 이름이 같을 뿐이지 결코 같은 사람은 아니다.하였다. (병진보 제117항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