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엔 남녘땅에 봄이 빨리도 찾아왔다. 전남 강진 탐진강(耽津江)은 겨울의 긴장에서 벗어나듯 화사하게 빛추며 따뜻한 봄의 기운이 완연했다. 강변에 있는 논밭의 보리는 벌써 녹색으로 변해버렸고, 느티나무엔 연초록 잎새가 피어나고 있었다.
새벽녘. 강진 보은산 우두봉 위에 걸친 뭉게구름 사이로 아침 해가 솟아올라 허공 가득 빛을 뿌린다. 전남 영암군 금정면 세류리 궁성산 계곡에서 발원해 첩첩 산골짜기를 흘러 강진까지 온 탐진강이 잠깐동안 붉은 빛으로 물이 든다. 강물은 강진땅 한복판을 지나 강진 구강포 앞바다에서 서남해와 만난다. 강 길이는 대략 100여리밖에 되지 않는다. 수심이 얕고 물살도 느린 아담한 강.
탐진강 유역의 상류에 해당하는 장흥 유치지역의 탐진댐 건설로 은어떼가 노닐고 고동이나 재첩이 많이 자라는 호남권의 마지막 청정수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하니 아쉬운 마음이 든다.
'탐진'이라는 강 이름은 탐라국의 배가 신라에 조공하러 강진 구강포로 드나들었다고 해서 탐라의 '탐'과 강진의 '진'을 합쳐 붙였다고 한다. 탐진강의 상류인 장흥 유치지역은 장흥에서도 험한 산악지역에 속하는 곳이다. 장흥댐이 건설되어 에전의 풍경을 보기 어렵다. 염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아낙들이 콩밭을 매던던 정겨운 강마을의 사람들은 이제 보상금 받아들고 하나둘씩 고향을 떠나고 없다.
상류쪽 탐진강변에는 신라때 창건된 고찰 보림사(寶林寺)가 있다. 인도 가지산 보림사, 중국 가지산 보림사와 함께 세계 3대 보림으로 불린다. 신라 구산선문(九山禪門) 가운데 가장 먼저 개산(開山)했다. 비자나무숲에 에워싸인 경내 약수는 한국의 열손가락안에 들정도로 맛이 좋다. 절마당과 숲에는 봄꽃들이 당장 꽃봉오리를 터뜨릴 듯 봄기운이 가득했다.
장흥댐을 지나면 강폭이 넓어져 비로소 강물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장흥읍으로 흘러드는 중류는 예로부터 탐진강의 으뜸 절경지로 꼽혔는데, 옛사람들은 이곳에 창랑정, 부춘정, 경호정, 용호정, 동백정, 영귀정, 사인정, 독취정의 여덟 정자를 세웠다. 부산면 부춘리의 부춘정과 용반리의 용호정, 장흥읍 송암리의 사인정에서는 지금도 탐진강의 빼어난 서정과 운치를 느낄 수 있다. 주변의 벚꽃도 곧 피어나 상춘객을 부를 것이다. 옛시인은 탐진강의 아름다운 모습을 '비 갠 맑은 강에 강물은 잔잔한데 강가 짙은 꽃 속에서 푸른 물로 목욕하네'라는 시로 남기기도 하였다.
물줄기는 장흥읍을 관통하는데 동교를 건너면 칠거리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상류쪽 신흥리까지는 아름드리 나무들과 대숲 사이로 한적한 길이 나 있다. 강 안팎에 갈대숲이 우거진, 짧지만 멋진 강변 드라이브 코스. 강물 위로 야트막이 놓인 시멘트 다리도 정겹다.
칠거리 남쪽 만물절곡 주변은 아름다운 갈대숲이 전개되는데 텃새가 돼버린 백로, 왜가리떼까지 날아들어 그림같은 강풍경을 만들어 사진작가들이 자주 들르기도 한다.
장흥읍을 관통한 탐진강의 강줄기는 강진으로 흘러들어 강진군민의 상수원이 된다. 상수원이 있는 군동 관선포에는 은어가 많기로 유명하다. 탐진강은 관선보에서 석교다리를 지나 세메기를 거치는데 합수통 같은 유명한 낚시터가 많고 재첩(갱조개)이 많은데 그 맛이 쌈빡하여 일품이다. 구강포로 흘러들어 물은 목리 다리 근처 강진만과 만난다.
옛시인이 강진의 아름다움을 읊은 금릉팔경에 구강어화(九江漁火)라 하여 밤에 구강포에서 고기잡이 배의 등불이 매우 아름다웠다고 한다.탐진강에는 1급수에서만 사는 천연기념물 330호 수달과 천연기념물 258호 무태장어, 은어, 고둥, 갱조개 등이 서식한다. 지난해 7월에는 탐진강 수중보의 어도를 따라 올라가는 수달을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그만큼 탐진강의 물이 싱싱하고 깨끗하다는 것이다. 탐진강이 강진만 바다와 만나는 하류에서는 겨울철에는 천연기념물 201호 큰고니떼가 많이 날아든다.
상류쪽에 오염원이 전혀 없는 이 땅의 마지막 청류(淸流) 탐진강. 그러나 물이 부족한 목포지역의 상수원을 확보하기 위해 건설된 장흥댐 건설로 지도와 풍경이 딴판으로 바귄 서글픈 운명의 강! 탐진강! 이러한 안타까움 때문에 탐진강의 봄빛은 여느 때보다도 더욱 푸르고 꽃향기 더욱 진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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