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답사일번지 강진

아름다운 강진

남촌 윤승식 2012. 8. 2. 14:35

 

전라남도 서남단의 다도해에서 육지로 오목하게 들어온 강진만이 있다. 북으로는 월출산을 경계로 영암이 있고, 영암에서 발원하여 동쪽 장흥을 거쳐 흘러온 탐진강은 강진 땅으로 와서 강진만으로 들어간다. 강진만은 탐진강의 하류이기도 하고, 그밖에도 많은 하천이 흘러들기 때문에 아홉 고을의 물길이 흘러든다는 뜻으로 구강포라고도 불린다.

영암에서 불티재 터널을 통과하여 강진으로 들어서면 뒷편에 국립공원 월출산이 우뚝 솟아 있다. 월출산 남쪽 자락인 성전면 월남리의 월남사지에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모전석탑(보물 제298호)과 월남사를 창건한 진각국사의 행적을 기록한 비(보물 제313호)가 남아 있다. 그 서쪽 월하리에 있는 무위사 극락보전(국보 제13호)은 조선 전기의 견실한 건축 양식과 내부의 벽화로 유명하다.

강진읍 남성리 탑동 마을에는 1930년대에 시문학파로 활동한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시인 김영랑의 생가와 시문학파기념관이  있다. 영랑의 시비는 강진읍 남성리 군립도서관 앞에 있고,동상은 강진중학교 앞 도로에 있다.

강진읍에서 강진만 동쪽 해안선을 따라 칠량,대구,마량까지 내려가는 23번 국도는 우리 나라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아름다운 길이다.

예전에는 강진 앞 바다에 밤이 되면 어선의 불빛이 가득하여 (구강어화:九江魚火)강진 일대의 여덟 가지 아름다운 광경을 꼽는 금릉팔경의 하나로 손꼽히기도 했다. 강진의 젖줄이라할 수 있는 탐진강이 흘러드는 강진만은 민물과 바닷물이 섞여 바지락이나 꼬막의 맛이 뛰어나다. 부근의 칠량면 봉황마을에서도 이제는 '바지락 농사'를 주업으로 하지만 예전에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칠량옹기의 생산지였다.

칠량면 남쪽에 바로 붙어 있는 대구면은 전북 부안군 보안면과 함께 고려 청자의 주요 생산지였다. 사당리, 계율리, 용운리 등에는 청자가 처음 빚어지던 10세기 무렵부터 14세기까지 각종 청자를 구워내던 가마터가 180여 군데나 산재해 있다. 요즘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국보급 고려 비색청자들은 대부분 이곳 강진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1986년부터 강진군이 운영하고 있는 고려청자 사업소의 강진요에서 비색청자의 아름다움을을 재현하고 있으며,청자박물관이 건립되어 청자의 발달과정이나 제작과정을 볼 수 있다.

대구면에서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마량이 있는데, 조선 태종 때 수군 만호진이 설치됐던 항구 마을이며 주변 해상교통의 요지이자 인근에서 나는 수산물의 집산지 구실을 하는 곳이다. 수군진이 있을 당시 제주도, 노화도, 완도, 소안도 등 주변의 섬에서 기른 말을 이곳에서 받아 한양으로 올려보냈는데, 배에서 내린 말들에게 먹이를 먹이던 곳이라서 마량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바로 앞 고금도와의 연륙교가 가설되엇고,행상공원이 조성되어 매주 토요일에는 토요음악회가 열리기도 한다.

강진읍에서 도암쪽으로 가면 강진만이 바로 보이는 만덕산 자락에는  다산초당과 백련사가 있다. 다산초당은 조선시대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 18년에 걸친 유배 생활 가운데 10년을 보낸 곳으로, 개인적인 시련 속에서도 사색과 탐구, 저술을 쉬지 않았던 그의 자취를 되새겨 볼 수 있다. 백련사는 신라 때 창건되어 고려 때 8명의 국사를 배출한 고찰이다. 고려 후기 불교 결사운동에서 조계종의 수선결사와 함께 양대 갈래를 이루는 천태종 백련결사의 터전이었다. 입구에는 멋진 동백숲(천연기념물)이 있다

이와 같이 강진에는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이 어느 곳보다 많아 영남대교수 유홍준씨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강진을 ';남도답사 일번지';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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