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윤씨

3. 고려(高麗) 시대의 성(姓)씨 사용

남촌 윤승식 2013. 7. 29. 12:26

고려시조(高麗始祖) 왕건(王建)을 추대한 공신(功臣) 홍난(洪鸞)(부계홍씨시조), 배현경(裵玄慶)(경주배씨시조), 신숭겸(申崇謙)(평산신씨시조), 복지겸(智謙)(면천복씨시조) 같은 분도 처음에는 성()이 나타나지 아니한다. 그분들의 처음 이름을 보면 우리말 이름 그대로 홍난(洪鸞) 홍술(洪述)이요, 배현경(裵玄慶)은 백옥(白玉)이며 신숭겸(申崇謙)은 삼능산(三能山)이요. 복지겸(卜智謙)은 복사귀(卜沙貴) 등과 같이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처음 이름만 써있다가 뒤에 나온 고려사(高麗史)(이조세종 때 편찬)에는 그 뒷 이름까지 쓴 것을 보아도 그들의 성명(姓名) 또한 고려 건국 후에 성을 하사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다시 고려초에 성을 하사받은 대표적 예를 몇 개 들어보면 신라장군(新羅將軍) 순식(順式)이 고려(高麗)에 귀순(歸順)하니 왕씨(王氏) ()을 주었고 신라인(新羅人) 김행(金幸) 고려(高麗) 태조(太祖)를 도와 권능(權能)이 많았던 까닭에 권씨(權氏) ()을 주니 이 분은 안동권씨(安東權氏) 시조(始祖), 회회인(回回人)(중동지방 사람) 삼가(三哥)에게 장순용(張舜龍)이란 성명(姓名)을 주니 이 분은 덕수장씨(德水張氏)의 시조(始祖). 이 밖에도 왕실과 국가에 대한 유공자나 일본족(日本族), 여진족(女眞族), 몽고족(蒙古族)의 귀화자(歸化者)에 대한 성의 하사도 많았으니 이 같은 사성제도(賜姓制度)는 이조(李朝)에 들어와서도 여진인(女眞人) 동두란(佟豆蘭)에게 이지란(李蘭)의 성명을 주어 청해이씨(靑海李氏)가 되고 임란(壬亂)때 귀화하여 정유재란과 병자호란에 공을 세운 왜장(倭將) 사야가(沙也可)에게 김충선(金忠善)이란 성명을 하사(下賜)한 예를 들수 있다.

이 밖에도 신라사(新羅史) 또는 고대 전설 속에 유명한 조상을 둔 사람들은 그 선조(先祖)의 성()을 추적하여 이를 계승하여 성()을 만든 이가)가 많았으니 예()를 들면 신라왕가 3(三姓)(() () ())의 후예(後裔), 신라 건국초의 육부촌(六部村)의 후손(後孫)(이씨(李氏) 최씨(崔氏) 손씨(孫氏) 정씨(鄭氏) 배씨(裵氏) 설씨(薛氏))이나 탐라(耽羅)의 고() () () 3(三姓)의 후손(後孫), 수로왕(首露王) 후손(後孫)등 우리나라 고족(古族)이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성()에 대한 필요성과 관심도는 그다지 높지는 않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