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걸 장군은 1545년(인종1년) 강진군 칠량면 율번(栗邊)에서 출생했다. 율번은 목암, 월송과 함께 칠량면 단월리에 속한다. 율번 마을은 1789년 <호구총서>에 기록된 28개 마을에서도 확인되고 있어, 단월리 3마을 중 가장 먼저 설촌된 것으로 보인다. 자는 국충(國忠), 호는 퇴은당(退隱當)으로 기마와 궁술에 출중하여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구강포(九江浦, 현구십포)와 정수사 사이에 쳐들어오는 적을 두 아우 서(瑞)와 경(慶), 외아들 홍립(弘立)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섬멸했다.
왜군이 강진만을 경유해 이곳으로 들어왔던 것은 고려청자 때문이었을 것이다. 적선 수백 척이 구강포에 들어오자 수백 개의 허수아비를 바닷가에 세우고 의병들이 후퇴하는 척 위장 전술을 펼쳐 정수사 골짜기에 매복해 유인된 적 수천 명을 소탕했다. 이후에도 염걸 장군은 의병장의 명을 받아 장흥 회령진과 몰운대(沒雲臺), 광양의 왜교성(倭橋成) 싸움에서 왜선 수백 척을 격파하는 등 연이은 큰 전공을 세우기도 했다. 특히 몰운대에서는 이순신의 셋째 아들 면을 살해한 적장 '馬希雍馬多齒'를 체포하기도 했다.
매년 7월말부터 8월초까지 열리는 강진청자축제때 대구면 사당리 도요지 주변 해변가에 수군 허수아비가 등장하는 이유를 이곳에서 찾았다. 왜군이 정자도료를 차지하려 강진만으로 처들어 왔을 때 위장전술로 염걸장군이 허수아비를 수백개 만들어 세워놓아 초병과 의병들이 많음으로 오인하게 해 사기를 올려 적들을 물리쳤다고 한다. 임진왜란의 영웅 염결장군 허수아비작전 역사재현이라는 강진청자축제는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에 부족하지 않다. 그리고 염결장군의 사충신묘는 지방문화재 36호로 지정되 칠량면 단월리에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가는 길
<승용차>강진읍에서 칠량을 거져 관산 방향으로 가면 칠량면 단월리 왼쪽에 염걸장군 묘소 표지판이 나온다.(약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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