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답사일번지 강진

천연 비색의 청자 도요지

남촌 윤승식 2012. 8. 10. 19:43

 

 

 

청자의 푸른 빛깔은 강진의 하늘이요, 천년의 신비를 간직한 고려 청자를 빛어낸 강진인의 숨결이다고 할 만큼 강진은 전국의 어느 지역보다도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이 많아 영남대 유홍준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강진을 남도답사일번지라 하였다.

 

강진읍에서 약 18km, 승용차로 25분쯤 가면 대구면 청자사업소가 나온다. 고려초 10세기부터 14세기까지 약4백여년간 고려청자를 굽던 곳이다. 고려청자는 한글, 판소리와 함께 우리민족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 손꼽히고 있다. 청자의 본토나 다름없는 중국인조차도 감탄하는 고려청자. 어떤 이들은 맑고 깨끗한 유약 색깔을 좋아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고려청자만의 독창적인 비법인 상감청자를 따를 것이 없다고도 한다.

오죽했으면 고려 인종원년(1123) 송나라에서 사신으로 왔던 서긍이 본국으로 돌아가 지은 고려도경에서 강진청자를 천하명물이라고 극찬했으랴!

 

강진의 고려청자 요지는 대구면 일대와 칠량면 삼흥리에 산재해 있다. 1914년 이곳 고려자기 요지가 널리 알려진 이래 세계에서 도자기에 관심있는 학자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강진 청자 요지의 핵심은 대구면의 용문천인데 상류는 용운리로, 동북쪽 산골짜기에 정수사가 있으며, 요지는 정수사 밑 운곡마을로부터 용문천이 바다로 흘러 들어 가는 해변에까지 산재해 있다. 용운리 가마는 몇 개소를 제외하고는 10세기 후반경으로부터 11세기 중엽까지 사이의 초기 요지로 중국의 월주요, 여요와의 관계를 살필수 있는 파편들이 각 요지에서 산견된다.

 

한편 대구 계치를 지나 용문천 하류의 넓은 들을 지나면 사당리가 나타나는데 여기에 현재 강진군에서 운영하는 청자사업소와 개인요들이 집결되어 있다. 고려시대에 가장 양질의 청자를 굽던 곳이다.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용운리일대는 비취색으로 유명한 고려청자를 생산한 지역으로 청자가마터는 총 185기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청자가마터는 9세기부터 14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대구면의 청자가마터는 제작지역 및 시기에 따라 용운리, 계율리, 사당리로 나누고 있다. 강진에서 이처럼 유달리 청자문화가 발달했던 것은 통일신라 후기 장보고 같은 해상세력의 강대로 해상교통이 발달하여 중국의 청자제작 기술의 도입이 빨랐고,청자를 만드는데 필요한 기후, , 연료, 해운 등 제반여건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려말기부터 청자기법이 쇠퇴한 후 600여년 동안 청자요지가 묻혀버린 채 맥이 단절되었다가 1977'사단법인 고려청자재현 사업추진위원회'가 구성되고, 옛 도공들의 기법을 연구하고 다시 익히는 각고의 노력 끝에 재현에 성공하였다. 1986년 강진군 산하에 청자사업소를 설치하여 매년 2만여점의 작품들을 구워내고 있다. 또한 1997년 청자사업소 내에 테마박물관인 강진청자자료박물관을 개관하여 청자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고 있다. 이곳 대구면 사당리 도요지에 들르면, 고려청자의 제작과정 및 고려청자의 다양한 면을 볼 수 있고 직접 물레를 돌려 청자를 빚고 문양도 새겨볼 수 있어 자녀들과 함께 찾아보아도 좋은 곳이다. 이 일대는 사적 제 68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가는 길

<승용차>강진읍칠량면대구 사당리 당전청자 사업소(18km,25분 소요)

 

<대중교통>군내버스:마량방향의 버스가 수시로 운행.당전서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