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윤씨
2. 신라(新羅) 시대의 성(姓)씨 사용
남촌 윤승식
2013. 7. 29. 12:24
중국 문화와 점차 교류가 많아짐에 따라 우리도 그들을 모방하여 왕가(王家)에서 먼저 성(姓)을 사용하였으며 그 밖에 일반 백성들도 점차 성(姓)을 사용하였으니, 예를 들면 김인문(金仁門) (신라의 대당외(對唐外) 문관(文官)), 김지양(金志良), 최치원(崔致遠) (신라말기의 대유학자 ), 최이정(崔利貞), 박계업(朴季業) 등처럼 당(唐)나라에 사신(使臣)으로, 또는 유학(留學)갔던 사람이나 장보고(張保皐)같이 당나라에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은 당(唐)나라 성(姓) 제도(制度)를 모방하여 성을 만드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장보고(註二 張保皐)는 본명(本名)은 궁복(弓福)이다. 당나라에 들어간 후 당나라 대성(大姓)인 장씨(張氏)를 본따 궁자(弓字)에 장자(張字)를 붙여 장(張)이라 성을 정하고 이름 복(福)은 음(音)을 따 보고(保皐)라 했다함.)
그러나 신라시대(新羅時代)에서는 성(姓)을 가진 사람이 왕족(王族)을 등 소수에 지나지 않았으나, 고려 건국후 왕(王)으로 부터의 성을 하사 받거나 스스로 라대(羅代)에 있었던 성을 따라 성을 정하는 예(例)가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