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 결사의 백련사
남도엔 봄이 오는데....
동백을 보지 않고서 남도를 보았다고 할 수 없다.
그처럼 동백은 남도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자리하고 있다. 고향을 떠나 사는 사람들은 '동백'이라는 말만 들어도 어릴적 고향을 머리속에 떠올린다. 애써 가꾼 동백나무가 빨간 꽃봉우리를 터뜨리면 마음은 어느 사이인가 고향에 가 있다.
60년대만 해도 남도의 어느 산에나 우거졌던 동백나무 숲.
뒷산의 골짜기에도, 집 뒤안의 울타리 가에도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강진,완도, 진도, 해남,여수 등 남도의 섬마을 들은 온통 동백숲으로 둘러 싸였고, 버들가지 피어있는 마을 어귀 실개천 가에는 동백꽃으로 채색되었다.
하지만 이 동백꽃도 지금은 예전만큼 흔하지 않다. 서남해안 남도에서는 해남의 두륜산, 달마산, 금강산이나 완도의 오봉산, 강진의 만덕산, 진도의 쌍계사,여수의 오동도 근처에서나 큰 동백숲을 볼 수 있다. 산골이나 바닷가 쪽을 가면 간혹 동백숲으로 둘러싸인 마을들이 있어 옛 정취를 말해 주고, 보길도를 가면 옛 모습의 동백을 볼 수 있다.
백련사의 동백꽃
청자의 고향이자 다산 정약용의 유적지가 있는 강진은 남도답사 일번지라 부른다.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봄을 맞이 할 수 있는 곳 중 하나다. 백련사 주변 동백나무는 어느 해인가 11월에 이상난동으로 흐드러지게 꽃을 피운 적이 있다. 1,500여 그루에서 피어나는 동백꽃들은 강진만 바다, 그리고 단아한 천년 고찰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한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3월중순께 활짝 핀다.. 천연기념물 151호.
백련사 사적비에서 더 서쪽으로 가면 허물어진 행호토성 너머 동백숲이 장관이다. 2월 중순이 지나면 만개한다. 이 동백나무 모두를 다산 정약용이 심었다는 말도 전해진다. 백련사에서 정약용이 18년간의 유배생활 중 10년을 지냈다는 다산초당에 이르는 40여분간의 등산로를 따라 동백나무가 줄지어 서있다.
그다지도 많던 백련사 주변의 동백숲이 왜 사라져 갔을까?
비뚤어진 향수병이 가장 큰 원인이다. 분재 애호가들이 동백나무 분재를 가장 선호하면서 백련사 주변의 동백나무들을 잘라내고 캐어 갔다. 동백나무를 보면서 향수를 달랜다는 것이 수십년, 수백년생 고목들까지도 무차별 희생시킨 것이다.
강진 만덕산 백련사에서 동백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2001년에 1회 동백축제를 개최한 적도 었다.
강진과 가까운 월출산의 경포대 계곡(강진군 성전면)에 가도 동백을 볼 수 있다. 월출산은 ‘남도의 소금강’으로 불릴 정도로 기암괴석 자태가 아름다운 곳으로 동백을 만날 수 있어 좋다. 성전면 월남에 있는 국립공원 월출산 주차장에서 20여분쯤 올라가면 기암괴석 사이 동백숲이 있는 금릉경포대가 나오는데,여기서 40여분간 붉은 동백꽃을 보며 걸을 수 있다.
동백나무란..
동백나무는 크게 세가지로 나뉜다. 추백(秋柏), 동백(冬柏), 춘백(春柏)이 그것이다. 추백은 11월 말에서 12월 사이에, 동백은 1월에서 2월사이에, 춘백은 3월에서 4월사이에 꽃이 핀다.
그래서 눈속에 피는 동백꽃을 보아야 진짜 동백꽃을 보는 것이다. 오리지널 동백꽃은 겨울의 칼바람 때문에 그리 화려하지는 않지만 속세를 떠난 비구니처럼 청아한 모습 그대로다.
우리가 흔히 보는 동백꽃은 엄밀하게는 춘백이다. 봄에 피는 동백꽃(춘백)의 이미지는 매우 강렬하다. 짙푸른 나뭇잎 사이로 붉게 피어 오른 꽃송이와 그 가운데 노랗게 자리잡은 수술은 선명한 색상의 대비를 이뤄 길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새악시의 입술처럼...
동백꽃은 꿀이 많지만 곤충들이 활동하기에 너무 추운 계절에 꽃이 피기 때문에 이 꿀들은 자연 동박새의 차지다. 동박새에 의해 수정이 되기 때문에 동백꽃을 조매화(鳥梅花)라 부른다. 남도의 동백숲을 찾으면 한 겨울에서부터 열심히 동백꽃을 찾아 나서는 동박새를 볼 수 있다.
예부터 우리 어머니들은 동백나무 열매에서 짠 동백기름을 머리기름으로 써왔다. 어릴적 동백기름을 바르고 참빗으로 곱게 빗은 우리 어머니의 모습은 한국여인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백련결사의 백련사엔 .....
강진읍에서 약8킬로 쯤 가면 다산초당 가기 전에 만덕산 백련사라는 절 입구가 보인다. 백련사는 고려시대 원묘국사가 백련결사를 일으켰던 사찰로서 고려시대 8대 국사를 배출한 학풍과 종풍이 동시에 깃든 사찰이라고 한다.
백련사는 해안에 위치해 있다보니 왜구의 침입에 따른 피해도 많았다고 전해온다.
백련사 입구인 동백 숲 아래까지는 아주 잘 닦여진 길이라 거침없이 올라올 수 있다.
백련사의 동백림은 천연기념물 151호로 지정 될 만큼 장관이다. 동백나무는 12월에서 3월 사이 따뜻한 바닷가에 무리 지어 자라는 나무로 초록잎과 붉은 동백꽃이 아름다운데 하얀 눈이 소복이 내리는 한 겨울에는 더욱 보기가 좋다. 우리가 간 1월도 동백꽃이 무리 지어 피어있었다.
10분도 채 안되게 걷다보면 길 왼편에 '다산초당 가는 길'이라는 나무 팻말이 보인다. 돌아서면 바로 백련사가 보인다. 절의 입구는 만경루가 버티고 있고, 그 옆에는 절 안에는 대웅보전과 명부전, 칠성각, 응진당 등이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각집으로 안에 목조 삼존불이 봉안되어있다.
백련사는 절을 구경하는 맛도 있지만 절을 등지고 해월루에서 잔잔하고 탁 트인 강진만을 바라보면 보기가 좋다.
가는길
버스를 이용한 경우 완행 11회 운행하므로 백련사 입구나 다산초당입구에서 내려서 각각 30분씩 걷는다. 백련사 다산초당은 산길로 20여분 걷는다. 승용차를 이용하는 경우에는 강진읍에서 20분 정도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