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가지

다산의 외가 자랑

남촌 윤승식 2009. 5. 21. 10:38

다산의 외가 자랑
  글쓴이 : 박석무     날짜 : 2004-11-05 00:12    
다산의 어머니는 해남 윤씨(尹氏)였습니다. 해남윤씨는 국 중에서 알아주는 명문의 집안이었습니다. 그러나 윤씨의 인물 중 가장 유명한 분으로는 누가 뭐라 해도 고산 윤선도(尹善道)를 들 수 있고, 그 다음으로는 공재 윤두서(尹斗緖)를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산이야 ‘오우가’나 ‘어부사시사’등의 국민 시조작가로 천하에 이름을 떨쳤고, 공재야 조선의 3재 화가(겸재, 현재, 공재)로 온 세상에 널리 알려진 분입니다. 

고산의 증손(曾孫)이 공재요 공재의 손녀(孫女)가 바로 다산의 어머니 윤씨였습니다. 그렇다면 고산은 다산의 외가 6대조요 공재는 다산의 외증조부가 됩니다. 그뿐이겠습니까. 고산은 시조시인일 뿐 아니라 당대의 예학(禮學)의 대가로 남인을 대표해서 노론이던 송시열(宋時烈) 등과 예론(禮論)으로 맞섰던 큰 학자였으며, 40대 후반에 일찍 세상을 떠난 공재는 화가보다는 당대의 학자로 큰 명성이 있었으니 다산이 자랑하기에 넉넉한 분이었습니다. 다산은 글을 지을 때마다 우리 고산선생님, 우리 공재선생님이라 호칭하면서 외가 선조들의 자랑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산 외조부의 형님인 낙서 윤덕희(尹德熙)는 아버지인 공재를 이은 당대의 화가였고, 그 아들인 청고 윤용(尹) 또한 할아버지, 아버지를 계승하여 화가로서의 큰 명성을 얻었습니다. 이른바 3대 화가의 집안이 바로 다산의 외가였습니다.

“윤용은 일찍이 호랑나비와 잠자리 등을 잡아다가 그 수염과 분가루 같은 미세한 것까지도 세밀히 관찰하여 그 형태를 묘사해서 기어이 실물에 핍진하도록 하고야 말았다.”라는 다산의 표현처럼 다산 외가의 화가들은 그림을 그려도 실학적인 사실화를 그렸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술은 갑작스럽게 이루어질 수 없다. 3대 정도 이어져야 제대로 그림이 나온다.”라는 다산의 주장은 역시 설득력이 있습니다.

친가인 나주 정(丁)씨 가문의 학문적 전통과 외가의 높은 학문과 예술이 합해져서 다산 같은 희대의 학자가 나왔으리니, 역시 전통은 무시할 수 없는 일임에 분명합니다.